경남 마산의 구도심, 그중에서도 월남동은 화려한 개발지보다 삶의 흔적이 묻어나는 동네다. 재개발에서 비켜간 오래된 골목, 벽돌집, 작은 상점들은 도시의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채 조용히 숨 쉬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마산 월남동을 따라 걸으며, 이곳의 로컬 정취와 골목 풍경, 그리고 기록할 만한 여행의 가치를 깊이 있게 담아본다. 관광지보다는 동네 속 이야기와 사람에 주목하는 이들에게 이상적인 여행 코스다.
로컬정취: 가공되지 않은 도시의 얼굴
월남동은 ‘유명한 여행지’는 아니다. 그러나 그 말은 곧 ‘진짜 마산의 일상’을 간직한 곳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관광객보다 주민의 발자국이 더 많은 골목, 간판이 바랜 노포, 수십 년 전 풍경이 남은 골목길 등은 도시개발에서 느낄 수 없는 로컬의 온도를 전한다.
동네를 걷다 보면 점포 앞에 나란히 앉아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 입간판을 직접 쓴 철물점, 고등어구이 냄새가 스며든 시장 골목이 차례로 펼쳐진다. 특히 월남동은 마산 어시장과 가까워 ‘먹거리 중심지’로도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다. 조용한 찻집 옆에는 어묵과 꽈배기를 파는 전통 간식 노점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오래된 이발소나 다방 같은 공간은 여전히 현역이다.
이러한 풍경은 의도적으로 꾸며진 테마거리와는 다른 생명력을 품고 있다. 청년 예술가들이 월남동에 흘러들면서 소규모 전시, 마을사진 프로젝트, 공공미술 시도 등이 하나둘 생겨났지만, 다행히 이들은 지역 정서를 해치지 않고 조용히 공존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렇기에 월남동은 ‘과거의 박물관’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로컬 생태계로 여행자에게 다가온다.
오랜 골목: 시간이 멈춘 듯한 골목 풍경
마산 월남동 골목을 걷다 보면, 시간의 속도가 이곳에서만 느리게 흐른다는 착각이 든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 2~3층짜리 낡은 건물, 담벼락에 남은 오래된 광고문구, 손때 묻은 철제 대문 등은 서울이나 부산의 재개발 구역에서 이미 사라진 것들이다.
월남동의 골목은 무작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주민들의 생활 동선에 맞춰 유기적으로 형성된 구조다. 이 구조 덕분에 하루에도 여러 번 마주치는 이웃들이 많고, 마을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실제로 이 지역에서는 아직도 골목에서 어른이 아이에게 말을 걸고, 가게 주인이 문턱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는 풍경이 남아 있다.
일부 골목에는 조용히 변화가 시작됐다. 폐가가 예술작업실로 바뀌기도 하고, 옛 창고가 로컬카페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변화는 무분별한 상업화가 아니라, 주민과 함께하는 속도조절된 도시재생의 좋은 예로 평가받는다.
산책 중에는 마산의 근현대사를 엿볼 수 있는 장소도 눈에 띈다. 일본식 목조 건물의 흔적, 70~80년대 다세대주택, 간이주점 같은 공간이 그대로 남아 있어, 마산의 산업화 시대와 함께 살아온 동네의 이야기가 골목마다 숨어 있다.
기록여행: 사라지기 전에 남겨야 할 것들
여행지에서 기록을 남긴다는 건 단순한 포토존을 찾는 것이 아니다. 마산 월남동은 ‘기록하고 싶은 동네’다. 개발 이전의 골목들, 사람들의 일상, 건물과 시간 사이의 감정들이 모두 도시의 살아있는 기록물이 된다.
최근 월남동에서는 청년 예술가들과 로컬 커뮤니티가 협력하여 ‘동네 기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주민 인터뷰를 엮은 책자, 골목 소리채집, 벽면 아카이브 사진전, 마을지도 만들기 같은 활동이 그것이다. 여행자는 단순한 관람자가 아니라 기록의 동참자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월남동 초입의 ‘로컬카페 겸 전시공간’에서는 지역의 변화 기록 전시가 수시로 열리고, 마을 사람들이 기억하는 장소의 옛 모습과 사연을 엮은 아카이브도 있다. 이런 전시는 단순한 향수 자극이 아니라, 현재의 도시 문제를 질문하게 만드는 비판적 사고의 장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월남동은 사진으로 남기기보다 기억과 질문을 남기는 여행지다.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더 중요한 아날로그 감성이 깃든 동네.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한, ‘마산의 속살’이 담긴 골목이다.
마산 월남동은 빠르게 소비되고 소모되는 여행지와는 다르다. 여기서는 속도를 늦추고,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어야 한다. 삶의 흔적을 담은 골목, 사람 냄새 나는 공간, 기억을 품은 풍경들이 조용히 여행자를 맞이한다. 월남동은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곳이지만, 화려하지 않기에 더 깊다. 우리는 지금, 이 골목을 걷고 사진을 남기고 기록함으로써 ‘마산의 기억’을 함께 지켜나갈 수 있다. 당신의 여행이 ‘발견’이자 ‘기록’이 되기를. 월남동은 그런 여정을 위한 완벽한 무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