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비하동은 오랜 시간 구도심의 한 귀퉁이로 조용히 존재해 왔지만, 최근 도시재생 사업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비하동의 도시재생 흔적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들을 따라가며, 변화 속에서 지켜야 할 삶의 기록과 의미를 되새겨본다. 걷기 좋은 도시, 기억이 머무는 동네, 비하동을 천천히 둘러보자.
재개발: 바뀌어가는 거리의 풍경
청주의 구도심 지역 중 하나인 비하동은 오랫동안 개발에서 소외되어 왔다. 한때 철길과 가까운 주거지로, 평범한 일상 속 삶의 터전이었지만, 점점 주변 지역들이 정비되고 개발되면서 비하동에도 재개발이라는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도시재생사업은 기존 주거환경을 정비하고 새로운 상업공간, 문화공간, 주거복합단지를 만드는 과정이다. 비하동 역시 일부 노후 건물 철거와 함께, 도로 정비 및 골목길 디자인 개선, 벽화 조성 등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주민 참여형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기존 주민들이 새로운 공간 설계에 직접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재개발은 항상 양면성을 지닌다. 삶의 터전이었던 공간이 사라지고, 세입자들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도 우려된다. 실제로 일부 골목의 오래된 상점이나 작은 분식집은 임대료 상승으로 문을 닫았다. 반면, 비하동에서는 로컬 청년들이 직접 운영하는 공방, 수제카페, 마을 기록관 등이 들어서며 지역성과 자생력을 살리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재개발은 단순히 새로운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감성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할지에 대한 고민이 동반되어야 한다. 비하동의 변화는 그런 고민을 담은 ‘도시 안의 실험실’로서도 의미가 깊다.
구도심: 사라지는 기억과 남는 정취
비하동을 걷다 보면 낡은 간판, 좁은 골목길, 오래된 주택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청주의 발전 이면에서 조용히 시간을 쌓아온 동네다. 구도심 특유의 정취는 단순히 ‘낡음’으로 치부되기보다는, 지역 주민들의 삶과 정서가 오랫동안 스며든 ‘기억의 장소’다.
도시재생 이전, 비하동은 대부분 단독주택과 저층 아파트로 구성되어 있었고, 골목마다 어린이들의 웃음소리와 노인들의 장기판이 펼쳐지는 일상적인 풍경이 존재했다. 그러나 변화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어느새 낯선 외관의 건물들이 기존 풍경을 대체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일부 주민들과 청년 활동가들은 구도심의 가치를 보존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오래된 식당과 상점을 취재하고, 주민들의 구술기록을 아카이빙하며, 사라져가는 공간의 사진을 전시하는 프로젝트가 그 예다.
또한 골목마다 새겨진 벽화나 조형물에는 단순한 미관 개선을 넘어, 지역의 스토리와 정체성을 담으려는 의도가 깃들어 있다. 예컨대 어떤 담벼락에는 1970년대 비하동의 주택단지를 그린 벽화가 있어, 지금은 사라진 공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구도심은 단순히 낙후된 공간이 아니라, 도시와 사람의 기억이 교차하는 중요한 장소다. 비하동은 지금 그 기억을 보존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흐름에 완전히 덮일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다.
삶의 기록: 사람과 공간이 남긴 이야기
비하동의 진짜 가치는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시설보다,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있다. 이 지역은 수십 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구멍가게 할머니, 오래된 인쇄소, 학생들로 붐볐던 분식집 같은 공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삶의 아카이브’다.
도시재생은 이 삶의 기록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청년 활동가들이 직접 제작한 ‘비하동 마을지도’에는 주요 상점뿐 아니라 ‘사람’의 흔적도 함께 담겨 있다. 예를 들어 “30년 된 이발소 주인장의 이야기”나 “철길 옆 국숫집 할머니의 한 마디” 같은 소소한 문장들이 지도에 표시되어, 여행자에게 지역을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최근에는 이러한 기록을 디지털로 남기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SNS 기반의 ‘비하동 사람들’ 프로젝트는 일종의 로컬 다큐멘터리로, 비하동 주민들의 삶을 짧은 인터뷰와 사진으로 기록한다.
또한 주민이 운영하는 작은 문화공간에서는 주기적으로 골목영화제, 마을전시회, 시민워크숍 등이 열리며, 도시 안에서도 공동체와 기억이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삶의 기록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미래 도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비하동이 도시재생 속에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이유는, 이러한 삶의 조각들이 여전히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비하동은 변화 중에 있다. 그러나 그 변화는 단순한 외형의 정비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그들의 기억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함께 담겨 있다. 도시재생은 마치 사람의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과도 같다. 개발의 속도에 휘둘리기보다는, 삶의 온기가 남은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는 여행이 필요하다. 비하동의 도시재생은 그래서 하나의 여행지가 될 수 있다. 빠르게 소비되는 관광지가 아니라, 오래도록 머무를 수 있는 삶의 기록지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