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깅은 늘 나와는 거리가 먼 운동이었다. 빠르게 숨이 차고, 다음 날이면 무릎이 욱신거렸고, 러닝 앱의 숫자에 스트레스를 느끼기 일쑤였다. 하지만 ‘조깅’이라는 단어에 ‘슬로우’라는 말이 붙기 시작하면서, 나는 새로운 여행의 문을 열게 되었다. 슬로우조깅(slow jogging)은 말 그대로 ‘천천히 달리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나에게 단순한 체력 관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도시를 달리되 바라보며, 몸을 움직이되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운동이자 명상이자 여행이 되어준 이 경험은 나를 러너에서 힐러로 바꿔놓았다.
1. 달리기는 늘 어렵고, 부담스러웠다
조깅을 시도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의욕을 앞세워 나간 첫날은 괜찮지만, 둘째 날부터 몸은 무겁고, 러닝화는 신기 싫어진다. 나도 그랬다. 운동을 잘해본 적이 없었고, 달리는 건 특히 더 어려웠다. 운동을 시작하기 위해선 큰 결심이 필요했고, 그 결심은 늘 작심삼일로 끝나곤 했다. “난 운동 체질이 아니야”라는 자기 합리화로 무기력한 일상을 살아가던 중, 어느 날 ‘슬로우조깅’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걷는 속도로 달린다고? 그게 운동이 돼?”라는 의문. 하지만 자세히 보니 슬로우조깅은 과학적 근거가 있는 운동이었다. 일본 규슈대학의 히로아키 타나카 교수는 “자신이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속도로 달리는 것”이 슬로우조깅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말이 될 정도의 속도’는 대개 시속 4~6km. 걷기보다 살짝 빠르고, 숨이 차지 않을 정도다. 이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근처 공원에서 시도한 첫 조깅은 솔직히 좀 쑥스러웠다. 걷는 사람보다 느리게 달리는 내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고, 주위 시선도 의식됐다. 하지만 5분이 지나자 그 모든 부담이 사라졌다. 평소엔 지나치기만 하던 벚나무 아래로 햇살이 들고, 바람 소리와 새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숨이 가쁘지 않았고, 무릎도 아프지 않았다. 뭔가 ‘내가 나와 리듬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달리는 것이 편안할 수 있다’는 감각을 맛보게 되었다.
2. 슬로우조깅과 함께한 제주 여행
달리는 게 즐거워졌지만, 여전히 도시는 숨 막혔다. 차량과 사람, 소음, 그리고 신호등까지. 그래서 나는 ‘자연 속에서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검색을 하다 찾은 곳은 제주도 구좌읍 세화~종달 해안도로. 사람이 많지 않고, 바닷바람과 햇빛, 완만한 경사가 이어지는 이 코스는 슬로우조깅에 최적화된 루트였다.
이틀간, 아침과 저녁 시간대를 골라 조깅을 했다. 아침엔 바다에 떠오르는 햇빛이 얼굴을 감싸고, 저녁엔 붉은 석양이 수평선을 물들였다. 주변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고, 파도 소리만이 나를 따라왔다. 20~30분간 천천히 달리며,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마음속 잡생각이 하나둘 사라졌다. 멈추고 싶으면 멈췄고, 앉고 싶으면 앉았다. 때로는 사진을 찍고, 때로는 가만히 바다를 바라봤다. 이건 더 이상 운동이 아니라 여행의 방식이었다.
슬로우조깅의 가장 큰 장점은 ‘아무런 장비나 조건 없이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싼 운동복이나 고급 러닝화를 살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속도도, 거리도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태도였다. 제주의 한적한 해안도로를 달리는 동안 나는 어떤 명상보다도 깊은 집중과 편안함을 느꼈다.
특히 좋았던 점은 관광 일정 없이도 하루가 채워진다는 것이다. 관광지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달리고 걷고 쉬는 것으로 하루가 충분히 의미 있었다. 카페나 식당, 서점은 코스 중간의 휴식처였고, 그것조차 계획하지 않은 만남이었다. 여행은 꼭 많은 것을 보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조깅 여행에서 깨달았다.
3. 바뀐 건 몸보다 마음이었다
슬로우조깅 여행을 반복하면서, 내 몸에 변화가 생기긴 했다. 체중이 조금 줄었고, 허벅지가 단단해졌고, 예전보다 덜 피로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변화는 마음의 체력이었다. 예전에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폭식하거나 무기력해졌고, 운동은 오히려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이제는, 머릿속이 복잡할수록 ‘한번 뛰고 오자’는 선택지가 생겼다.
이제 슬로우조깅은 내 루틴이 되었다. 일주일에 3~4번, 해 질 무렵 동네를 조용히 달린다. 특별한 목적도 없고, 기록도 남기지 않는다. 그저 음악 대신 바람소리를 들으며 한 발 한 발 내디딜 뿐이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과 단절된 시간, 오롯이 나만의 리듬을 되찾는 시간이다.
이 경험은 내 삶의 다른 영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완벽주의를 내려놓는 법, 천천히 해도 괜찮다는 믿음,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는 자세가 생겼다. 슬로우조깅은 단순히 운동을 바꾼 게 아니라, 나의 사고방식,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바꾸어놓았다.
결론: 조깅은 빠를 필요 없다. 삶도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조깅을 시작하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포기한다. 속도, 기록, 체중 감량 같은 목표가 오히려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로우조깅은 그런 목표가 필요 없다. 걷듯 달리며, 세상을 천천히 바라보는 시간. 나를 치유하는 여행. 조깅 초보였던 내가 ‘힐러’가 될 수 있었던 건, 이 운동이 내게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당신도 지치고 있다면, 꼭 멀리 가지 않아도 좋다. 가까운 공원, 해안도로, 마을길을 천천히 달려보자. 그 길의 끝에는 더 건강한 몸과 마음이, 그리고 조금은 더 따뜻해진 당신 자신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